나는 왜 불온한가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은 현재 우리 정치판에 끼어들기 위한 출입증에 다름 아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으로 독재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도덕성을 확신하고 사람들에게 홍보한다. 비참한 현실은 민주화 운동을 훈장삼아 정치판에 뛰어든 이들이 당시의 믿음이나 신념에 반대되는 일을 하는데 앞장선다는 것이다. 정치권에 들어간 386세대들이 대추리에 군사작전을 펼치는 것을 방관하고 앞장서서 한미FTA 반대 집회에 나선 민중들을 억압하는 것은 차라리 희극이다.

 

 물론 사람은 변할 수 있다. 80년대에는 좌파적 신념이 옳다고 믿었지만 현재는 앞장서서 우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민중들의 투쟁에 함께 하던 사람이 이제는 민중들을 짓밟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바꿀(그것이 옳은 일이 아니라 해도) 자유는 있는 셈이다. 하지만 비열하고 치졸하다. 최소한 그 정치인들이 지지를 호소할 때 내세운 것은 또 지지자들이 기대한 모습은 바로 민중과 함께 하던 과거의 모습이다. 보수적인 행동을 할 거였으면 처음부터 자신은 그런 인간이라는 것을 내세워야 한다. 초지일관이라는 면에서는 변절하는 정치인보다 차라리 처음부터 변치 않는 정형근 같은 이들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김규항 씨는 민주화 경력을 팔아먹고 사는 동시대 사람들을 소리높여 비난한다. <나는 왜 불온한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을 향해 거침없이 직언을 날린다. 그는 호불호가 분명하다. 발언 후의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책을 읽어갈수록 그는 망설이지 않았고 발언들을 스스로 걸러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신념을 지키면서 사는 일의 어려움과 그런만큼 떳떳하게 살아가는 김규항의 일상을 접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조금은 후련하고 조금은 답답해진다.

by 레스타트 | 2007/05/17 00:01 | livre | 트랙백 | 덧글(0)

나만의 공간

시골 할아버지댁에는 마당 한 켠에 작은 골방이 하나 있다. 할아버지댁에 기름 보일러가 설치되었지만 별채 격인 이 방은 아직도 아궁이에 나무를 때야 하는 온돌식이다. 거의 창고로 쓰이지만 가족들이 많이 모일 때는 깨끗하게 치워 잠자리로 쓰기도 한다. 창고로 쓰일 때는 지저분하기 때문에 식구들은 아무도 이 방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할아버지댁에 놀러가면 혼자서 이 방에 숨어 놀곤 했다. 혼자 숨어 동생몰래 과자를 먹기도 했고 아버지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를 몰래 주워 보기도 했다. 담배를 피워봤을 땐 기침이 멈추지 않았고 어머니에게 걸려서 맞기도 했다. 내 아지트였던 셈이다.

 

 서울시장 후보였던 강금실 전 장관, 소설가 김연수, 만화가 이우일, 언론인 홍세화 씨등 11명이 자신의 삶과 시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저자 중 한 명은 "누구에게나 공간은 기억이고, 시간의 응축"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저자는 "시간은 현실을 기억 속으로 실어 나른다. 시간에 의해, 내 몸 바깥 현실의 물질성은 내 뇌 안에서 관념으로 해체돼 갈무리된다. 그 관념의 사간이 바로 나만의 공간이고 나만의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내 아지트였던 그 골방은 내 기억의 응축이다. 골방에 몰래 숨어 초등학생이 해 보기엔 너무 이른 일탈(?)행위들을 저지르며 낄낄댔던 날들이 무려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건 추억을 갖는다는 것이고 행복하다는 것일테다.

by 레스타트 | 2007/05/17 00:01 | livre | 트랙백 | 덧글(0)

세상을 깊게 보는 눈

'신문이 위기'라는 말이 나온지는 오래되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어디서나 쉽게 뉴스를 접하면서부터다. 신문은 이제 속보성에서 인터넷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거기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무가지들도 신문의 위기를 부채질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신문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일까? 신문은 해결책을 탐사보도에서 찾았다. 인터넷과 무가지에서 볼 수 없는 심층적이고 분석적인 보도를 통해 신문 만의 살 길을 찾아낸 것이다.

 

 2007년 2월초 각 언론사에서 탐사보도를 담당하는 기자들이 모였다. 기자들이 모여 탐사보도가 무엇인가를 토론하고 자신들만의 취재기법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물이 바로 '세상을 깊게 보는 눈'이다. 한국탐사언론인회는 탐사보도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 변화를 시도한다.

● 새로운 추세를 보여준다.

● 한 주제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파고든다.

● 공중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안에 도전한다.

● 발표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발품'을 판다.

 

우리 언론도 탐사보도라는 콘텐츠의 변화를 통해 멀어져가는 독자들을 사라잡아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외국 신문처럼 획기적인 디자인 변화나 판형 변화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by 레스타트 | 2007/05/17 00:00 | livre | 트랙백 | 덧글(0)

일상의 발견

철학이라는 이름은 부담스럽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자크 데리다까지 최소한 철학자 한 명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고 구조주의나 해체주의에 대해서 공부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신문에 철학자들이 쓴 칼럼을 읽을 때마다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때때로 쉬운 걸 꼬아서 어렵게 만드는 게 철학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영산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는 김용석 교수가 쓴 <일상의 발견>은 철학자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을 깨준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물건이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철학으로 풀어낸다. 철학이라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듣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철학자들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첫 글인 '가위' 문화가 인상적이다. 언제부터인가 식당에서 아무 거부감없이 사용하고 있는 식가위. 그는 식가위는 위험하며 식탁문화에서 지나치게 편이성을 내세워 멋과 맛을 모두 없애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사소한 사물에 대해서도 삶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는 그의 글을 읽으며 진정한 철학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by 레스타트 | 2007/05/16 23:59 | livre | 트랙백 | 덧글(0)

젊은 사슴에 관한 은유

고2때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독립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가족과 떨어져 살아오고 있다.

대학입학을 앞두고 짐을 꾸려 서울로 올라오는 날 아침 식탁에서 아버지는 "이제 너는 혼자 살아가야 한다. 가족과 떨어져 산다는 것은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네 삶을 간섭하거나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라."고 말씀하셨다. 부모님 그리고 정든 집과 떨어져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한 편으로는 해방감을 주었고 한 편으로는 두려움과 왠지 모를 서글픔을 주었다.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이제는 그런 기분도 많이 무뎌졌지만 그래도 가끔 삶이 힘들거나 외로울 때 어머니가 차려주신 식사와 잠자리에 들기전 건네는 아버지의 말씀이 한없이 그리울 때가 있다.

 

 박범신의 산문집 '젊은 사슴에 관한 은유'는 작가를 떠나서 한 가족의 아버지, 남편으로서 가족들에게 보내는 글이다. 글 하나하나에 가족을 향한 애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지금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의 과거는 녹록지 않았다.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예술적 감성으로 무장되있던 젊은 시절, 한 줄의 글을 쓰기도 어려울 만큼 신경이 날카로워 가족들에게 주었던 상처를 그는 글을 통해 되돌아보고 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작가가 아이들이 어느정도 자랐을 때 집을 팔기로 결정했던 점이다. 그는 집을 팔아서 아이들은 작은 원룸을 얻어 독립시키고 자신은 자신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독립적인 삶을 꾸려가기로 했다. 가족끼리 뭉쳐사느라 낭비도 많고 가족끼리의 관계에 부응하느라 자신의 꿈을 좇아 일관된 열정으로 살 수도 없으니 차라리 생산적인 의미에서 가족해체주의로 나가자는 것이다.

 

 역시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족과 오래 떨어져 살았던 내 경험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우리 가족의 관계가 종속적이고 집단적이기 때문에 너무 소모적이라고 했지만 수평적인 서구 사회에서 가족이 소모적인가? 예술가를 아버지로 두는 일은 자랑스럽고 뿌듯하겠지만 한편으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y 레스타트 | 2007/05/16 23:58 | livre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